원화 스테이블 코인, 실패한 테라(Terra)와 무엇이 다른가?

과거 테라(Terra) 사태의 악몽 때문에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불안감이 엄습하시나요? 1코인이 항상 1원의 가치를 가질 것이라는 약속, 또다시 무너질까 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실제로 많은 투자자가 ‘죽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손실을 경험했기에 당연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모든 스테이블 코인이 테라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실패는 더 안전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규제와 기술로 무장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우리의 금융 생활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알아볼 때입니다.



새로운 원화 스테이블 코인, 핵심만 짚어보기

  • 실패한 테라(Terra)는 실물 담보 없이 오직 알고리즘에 의존해 가치를 유지하려 했지만, 새로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량만큼의 실제 원화(KRW)를 은행 등에 준비금으로 보관하여 안정성을 확보합니다.
  • 과거와 달리 ‘디지털자산기본법’과 같은 강력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이제 스테이블 코인 발행 주체는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엄격한 감독과 규제를 받게 됩니다.
  •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수수료가 저렴하고 빠른 결제와 해외송금 등 실생활에 유용한 지급결제 시스템의 혁신을 가져올 잠재력을 지녀 금융 시스템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테라(Terra)는 왜 실패했는가

담보 없는 약속,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함정

테라의 실패를 이해하려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안정적인 스테이블 코인은 발행된 코인의 가치만큼 실제 법정화폐(달러나 원화 등)를 은행에 예치하는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 방식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테라(정확히는 테라의 스테이블 코인 UST)는 이러한 실물 담보가 없었습니다. 대신 자매 코인인 ‘루나(LUNA)’와의 교환 가치를 조절하는 알고리즘을 통해 1 UST가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UST의 가치가 1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싼값에 UST를 사서 1달러 가치의 루나로 바꾸게 해 UST의 공급량을 줄여 가격을 올리고, 반대로 1달러 위로 올라가면 루나를 UST로 바꾸게 해 공급량을 늘려 가격을 내리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해 보였지만,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자 이 시스템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대규모 매도로 UST의 가치가 급락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루나의 발행량이 무한정 늘어났고 결국 루나의 가치마저 폭락하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연 20%에 가까운 파격적인 이자를 지급하던 ‘앵커 프로토콜’에서 대규모 자금 인출(코인런)이 발생하며 붕괴는 가속화되었습니다.



새로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

실제 돈으로 가치를 보증하는 법정화폐 담보 방식

테라 사태 이후, 시장과 규제 당국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구조적 취약성을 명확히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논의되는 새로운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테라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들은 대부분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 모델을 따릅니다. 이는 코인 발행 주체가 100억 원어치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했다면, 반드시 시중 은행이나 신탁사에 10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준비금으로 예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투자자는 언제든지 자신의 코인을 실제 원화로 1:1 교환을 요청할 수 있으며, 발행 주체는 이 준비금을 통해 상환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는 USDT(테더)나 USDC와 같은 글로벌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운영되는 방식과 같습니다.



다양한 스테이블 코인 비교

특징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예: 테라) 법정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 (예: 신규 원화 스테이블 코인, USDT) 암호화폐 담보 스테이블 코인 (예: DAI)
담보물 없음 (알고리즘으로 조절) 법정화폐 (원화, 달러 등) 다른 암호화폐 (이더리움 등)
가치 유지 방식 자매 코인(루나) 발행/소각을 통한 차익거래 유도 발행량과 1:1 비율로 준비금 예치 초과 담보 설정 (예: 100달러 가치 코인 발행 위해 150달러 가치 이더리움 예치)
주요 리스크 페깅 붕괴, 코인런, 시스템 전체의 신뢰 상실 발행 주체의 신뢰도, 준비금 관리의 투명성 및 감사 문제 담보 자산의 가격 변동성, 스마트 컨트랙트의 기술적 위험

강력한 규제의 울타리: 디지털자산기본법

과거 테라가 등장했을 때는 디지털 자산 시장에 명확한 규제가 없는 ‘무법지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시행과 더불어, 스테이블 코인을 포함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 전반을 규율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의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의 핵심은 스테이블 코인 발행 주체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감독입니다.



앞으로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려는 시중 은행, 핀테크, 빅테크 기업 등은 반드시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합니다.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기자본을 갖추고, 해킹 등으로부터 투자자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확인제도(KYC) 의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합니다. 금융 당국은 발행 주체가 준비금을 투명하게 운용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실사하고 감사하여 투자자 보호 장치를 강화할 예정입니다.



원화 스테이블 코인이 가져올 미래

결제와 송금의 혁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은 단순히 거래소에서 쓰이는 투자 자산을 넘어, 우리 경제의 지급결제 시스템을 혁신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통해 중개기관 없이 개인 간(P2P) 송금이 가능해져 수수료가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처리 속도는 빨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복잡한 절차와 높은 수수료가 발생했던 해외송금 분야에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는 달러 패권에 대응하여 원화의 위상을 높이고 금융 주권을 확보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디파이(DeFi) 생태계의 확장

원화(KRW)와 가치가 연동되는 안정적인 디지털 자산의 등장은 국내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시장의 성장을 촉진할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큰 다른 암호화폐 대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유동성 풀에 자금을 예치하고 이자 농사(yield farming)와 같은 다양한 디파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더 많은 자본이 디파이 생태계로 유입되는 통로가 될 것이며, 이는 곧 다양한 혁신적인 금융 프로젝트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

민간 기업들의 원화 스테이블 코인 발행 움직임과 별개로,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CBDC는 민간이 아닌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안정성을 보장합니다. 앞으로 민간 스테이블 코인과 한국은행의 CBDC가 상호 보완하며 공존할지, 아니면 경쟁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금융위원회와 신설될 디지털자산위원회는 이러한 변화가 금융 안정과 통화 정책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 방향과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rror: Content is protected !!